프놈펜한국국제학교에서 맞이 하는 스승의 날
작성자 정보
- 아싸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8 조회
- 0 추천
- 목록
본문
나는 현재 프놈펜한국국제학교 9학년 담임이고, 7, 8, 9학년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퇴임 후, 다시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아이들이 사랑을,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랐다는 점이다.
한국과 다른 환경에서 아이를 기르고, 교육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사랑과 칭찬을 듬뿍 해주었을까? 아이들이 구김살이 없고 맑고 밝다. 그리고 자기의 이야기를 잘한다.
사랑보다는 반듯함으로 아이들에게 다가섰던 지난날
교직 생활 내내 아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하였다. 교사로서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알았기에 퇴임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로 들어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퇴임 후 다시 교직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퇴임 후, 다시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 달라졌는가? 스승의 날을 맞아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교직 생활 내내, 스승의 날은 나에게는 힘든 하루였다. 조회 시간이라 어쩔 수 없어 학급에 들어가면 만난 지 2개월 남짓한 나를 즐겁게 환대하여 주고 축하하여 준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영 어색하다.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스승의 날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하였지만, 나는 이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아이들은 내가 함께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모습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껏해야 '부끄럽고 고맙다'라는 간단한 말로 끝내고 교실을 급히 빠져나온다. 아이들의 실망한 모습이 뒤통수에 그대로 와 닿는다.
아이들에게 축하받는 것이 부끄럽다. '스승의 날'이란 이름이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환대하여 주니 고마운 마음 그지없다. 하지만 그것이 분에 넘치기에 그 자리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지난 4월에 학부모 상담 기간이 있었다. 학생 어머니가 나에게 묻는다.
"우리 아이가 학교생활은 잘하는지, 그리고 학업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OO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으며, 학업 능력도 뛰어나며 매력적인 아이입니다."
나의 대답이 조금 의외인 듯,
"선생님은 아이들의 좋은 점만 바라보고 칭찬하는 것 같습니다."
그때 내 대답이,
"저는 사람에 대한 칭찬은 인색합니다. 하지만 잘못은 잘 지적합니다."
사실 그랬다. 학교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반듯하게 자라주길 바랐다. 그래서 규칙과 예절 그리고 책임이 우선이었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반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는 엄하게 꾸짖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칭찬에도 매우 인색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글을 써올 때마다 흠을 잡으니, 내 칭찬을 한번 들어보고 싶어 계속 글을 써왔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 후, 이 아이는 선생님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선생님이 되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지만, 이 아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참 좋다.
그랬던 내가 어떻게 아이들을 칭찬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나간 것 같다.
내가 바뀌게 된 첫 사연은 이렇다. 그때 우리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기숙형 학교이기에 기숙사생이건 아니건 시험을 마치고 나면 학교에서 6시까지 공부하고, 급식을 먹고 하교하여야 한다.
중간고사 기간인 그날, 나는 아이를 데리러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6시가 되자 바로 나온다. 저녁을 먹지 않고 나온 것이다. 학교에서는 저녁을 먹도록 지도하고 있는데, 선생님의 눈을 피해 나온 것이다. 나는 오는 차 안에서 물었다.
저녁을 먹고 와야지, 그렇게 하면 되나?
아이의 대답이, 다른 아이들도 다 그렇게 한다며 말대꾸한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는 그날 시험을 뜻대로 치지 못하여 기분이 몹시 우울했을 것이다. 우울함에서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똑같은 공간에 남아 있으니 그 우울함이 더 심해졌을 것이다. 그 우울함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기 위해 저녁을 먹지 않고 나온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데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덩달아 하면 어떻게 하느냐면서 심하게 호통을 쳤다. 아빠가 학교 선생님인데, 선생님의 눈을 피해 그렇게 하면 되느냐면서 집에 가는 내내 차 안에서 꾸짖었다. 아이는 그래도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뭐가 서러운지 계속 눈물만 흘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아내도 아이를 따끔하게 혼내주길 바랐다. 그런데 아내가 뜻밖의 말을 한다.
아이가 기분이 우울해 아빠에게 하소연하는 것을, 당신은 아빠로서 아이의 마음은 헤아려 주지 않고, 선생님으로서 딸을 가르치려고만 하니 당신이 무슨 아빠냐?
오히려 나를 탓한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화를 낸 상황을 수습할 수 없었다. 딸에게 정말 미안했다.
이후 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고 학부모를 만나면 이 이야기를 해주며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힘든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아이의 편을 들어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반드시 이야기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집에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는 여전히 엄격했고, 아이들에게 반듯함을 요구했다. 그렇게 나는 교직 생활을 마쳤다.
이제는 반듯함보다 사랑이 먼저
지난해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가르친 학생 중 30년 인연을 이어가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40 중반이 넘어 막내를 출산했다. 어느 날 전화하는 도중 이런 말을 한다.
아이가 집안에서 귀염을 받고 자라다 보니 버릇이 없을까 걱정이 된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버릇보다 사랑이다.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지 못했다. 늘 '반듯하게'가 먼저였다.
이런 반성이 쌓이고 쌓여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그 아이가 지닌 좋은 점을 보려 하게 된 것 같다. 퇴임하고 난 뒤에야 교사로서 철이 들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도 이것이 어딘가. 이제라도 철이 들기 시작했으니.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너무나 다행스레 어제(14일)는 캄보디아의 전 국왕인 '노로돔 시하모니' 탄생일이라 휴일이었고, 오늘(15일)은 '왕실 농경절'이라 휴일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동안 '반듯함보다는 사랑'으로 다가서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함을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되새겨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재캄보디아 한인회, 뉴스브리핑 캄보디아에도 실립니다.
관련자료
-
다음